STORY

[Colon] Waterproof (1)

wrtn 하랑 2025. 4. 10. 02:33

<오빌리안의 사탕가게> 콜론 씨

 

-🚨Trigger Warning: 자살 및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간접적인 묘사가 존재합니다. 감상에 유의해 주세요.

-현실적인 배경이 등장하지만, 관련된 모든 서술은 1인칭 시점 캐릭터의 페르소나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지 제작자 본인의 어떠한 정치적/문화적/경제적 등의 사견이 포함된 것이 아님을 명시합니다.

-글에 등장하는 모든 지명/등장인물/세계관 등은 제작자의 독자적인 창작물이며,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 * *

 

어제, 내 라이벌이 죽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상사의 괴롭힘. 나는 그 사실을 마치 점심 메뉴 말하듯 말하는 동료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한 사람이 죽었다는 커다란 파도는, 그저 점심 식사에 곁들이는 한 잔의 물로 전락해버렸다. 그 사실이 몹시 아이러니했다.

 

담배 냄새가 코를 찌른다. 니코틴에 절여진 옷들의 냄새가 순간 역겨웠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도 않을 거면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아래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작은 점처럼 보였다. 나는 손을 뻗어 보았다. 어린 시절 갖고 놀았던 장난감 블록처럼 작은 존재들이 잡힐 것 같다. 하나 다른 점이라면, 내 마음대로 부수고, 창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랄까. 하지만 뭔가를 내려다보는 기분은 꽤 만족스러웠다. 어제 죽었다는 그도 이런 기분을 느꼈을까. 이제 와서 그건 중요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 * *

 

촤악. 한 잔의 물이 내 머리 위로 쏟아진다. 나는 한 마리의 짐승처럼 소리지르는 내 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물을 맞은 건 나인데, 남자는 광견병에 걸려 물을 두려워하게 된 미친 개처럼 부들부들 떨며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남자의 말이 모두 뭉개져서 들을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내 승진에 관해 이야기하는 거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죄송합니다, 부장님. 제가 실수했습니다.”

“죄송하다고 하면 다야! 너 때문에…!”

 

남자의 말이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저 동물이 짖는 소리로만 들린다. 내가 이상해진 걸까? 나는 내 귀 한쪽을 만져보았다. 내 머리 위로 쏟아진 한 잔의 물은 내 체온을 닮아 어느새 미지근해져 있었다.

 

* * *

 

점심시간이 끝나 자리로 돌아왔다. 내 자리에는 면책을 위해 대충 휘갈겨 쓴 것이 역력한 하얀 종이와 캐러멜 한 갑이 놓여있었다. 노란 표지에 투박한 글씨로 ‘밀크 카라멜’이라고 적힌 그것은 나도 익히 아는 것이었다. 이 사무실에서 이것을 먹을 만한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아까는 내가 심했네. 마음 풀었으면 좋겠어.’ 쪽지는 구겨진 이면지에 쓰여있었다. 잉크가 번져 잔뜩 더러워진 것은 나에게 뭔가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이면지를 바라보다가, 그것을 구겨 내 자리 밑에 있는 쓰레기통에 넣었다. 내 마음이 이깟 사탕 한 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인식된다는 사실에, 나는 상당히 짜증나졌다.

 

* * *

 

시간이 흐른다. 시계가 절반으로 나뉘었다. 나는 내 일을 모두 마쳤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에서 부장이 불만스럽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나,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약점을 잡힌 사람은 늘 을이 되는 법이다. 그러니 부장과의 관계에서 오늘만큼은, 나는 갑이었다.

 

나는 분명 돌아갈 곳이 뚜렷하게 존재했음에도, 이 땅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어진 이방인처럼 정처 없이 걸었다. 오늘도 목적지는 없었다. 아무튼, 집에 돌아가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나는 후미진 골목으로 들어갔다. 어릴 적, 이곳에 낡은 책방이 있었던 것을 기억해 냈던 탓이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책방이 아니라 밝은 불빛의 사탕 가게가 자리해 있었다. 나는 그 가게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골목과 어울리지 않는 그 신식 가게는, 왠지 이방인이 되어버린 나와 닮은 것처럼 보여서. 나는 그 앞을 떠날 수 없었다. 나는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가게 안을 들여다보았다. 가게 안에는 몇몇의 손님들이 있었고, 알록달록한 사탕이 가득했다. 일반적인 사탕 가게와 다른 점이라면, 아이들은 찾아볼 수 없고 어른들만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퍽 기괴했다.

 

“들어오셔도 됩니다. 밖은 추울 텐데요.”

 

나는 가게 안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찬란한 은발에 창백한 피부, 회색 눈을 가진 남자는 분명 외국인이었다. 내가 그 말에 따를 이유는 없었을 텐데도, 나는 왜인지 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책방이 있었던 것 같은데, 문을 닫았습니까?”

“책방이요? 아, 그렇죠. 닫은 건 아닙니다. 그저, 저녁에는 제가 쓰기로 계약을 맺은 것 뿐이죠.”

 

그 말은 꽤 이상했다. 남자는 고급 정장에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고, 책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사탕 거치대들이 가득했다. 전혀 용도가 다른 공간과, 이질적인 복장을 한 남자, 그리고 사탕 가게에 가득한 어른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들은, 오히려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어린 시절, 엄마와 사탕 가게 앞을 지나가며 형편에 맞지 않는 ‘사탕 가게는 들어가지 않기’라는 오랜 약속을 깨고 가게 안으로 발을 들였다. 은발의 남자가 웃었다. 그 웃음은 빚은 듯 완벽했다.

 

“방문하기로 결심하셨군요. 좋아요. 이곳은 ‘오빌리안의 사탕 가게’입니다. 제가 오빌리안이에요. 환영합니다, 175번째 손님.”

“…손님이 몇 명이나 오는지 하나씩 세는 편이십니까?”

“아, 조금 특이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러는 편이랍니다. 아무래도…, 손님들이 중요해서요.”

 

나는 눈을 좁혔다. 남자의 ‘중요하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렸던 탓이었다. 보통 손님들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라고 표현하지 않던가? 중요하다는 것은 물건에만 붙이는 표현이라고 생각해 왔던지라, 나에게는 남자의 표현이 퍽 이상한 것이었다. 남자는 그린 듯 웃으며 내 사원증을 바라보았다.

 

“그건 잠시 빼 놓는 게 좋겠네요. 이곳은 모든 압박과 제도가 없어지는 공간이니까요. 모든 손님께 가명을 사용하는 걸 권장하고 있답니다.”

“가명?”

“네, 가명이요. 가짜 이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진짜 이름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그럼 당신 이름도 가명입니까?”

 

남자는 어깨를 살짝 으쓱했다. 나는 남자의 이름표를 바라보았다. 오빌리안(Oblian). 언젠가 들었던 바이올린 연주곡이 떠올랐다. <오블리비언(Oblivion)>. 이상한 이름이었다. 분명 존재하는 존재에게 ‘망각’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모순덩어리였으니까. 살아있다는 건 잊히기 싫다는 강한 의지의 증거 아니던가? 이곳은 나의 상식과는 아주 다른 공간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제가 손님을 뭐라고 불러 드리면 될까요?”

 

남자가 말했다. 나는 오랫동안 고민했다. 내가 불리고 싶은 것. 분명히 취업 시장에 뛰어들기 전까지는, 그런 것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 사회의 부속품이 된 이상 그런 것은 사치였기에, 나는 잊혀져 버린 소년의 일기를 끄집어내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콜론(Colon). 콜론이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

 

내 안의 어린 소년이 대답했다. 소년은 어떤 존재를 잠깐 쉬어가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문장의 쉼표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 했었던 것 같다. 은발의 남자가 웃었다. 그리고 내 왼쪽 가슴에 이름표를 붙여 주었다.

 

“환영합니다, 콜론 씨.”

 

심장 박동이 이름표를 움직일 만큼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어린아이도 아는 사실이었지만, 소년은 왜인지 그것이 이름표를 움직일 만큼 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은빛의 그 명찰을 만져보았다. 은색의 작은 판자는 차가웠다. 아니, 아주 뜨거웠다. 순간적으로 차갑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나는 감성적인 사고는 딱 질색이었으나, 오늘만큼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 Waterproof (1)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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