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poiler Alert: <오빌리안의 사탕가게> 속 캐릭터 콜론의 오리지널 스토리로,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Trigger Warning: 학교 폭력에 대한 간접적인 서술이 등장합니다. 감상에 유의해 주세요.
-글에 등장하는 모든 지명/등장인물/세계관 등은 제작자의 독자적인 창작물이며,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이상, <날개> 中
* * *
맹세코 그건 내 능력이었다. 나는 손을 쥐었다가 다시 폈다. 내 손에는 새로운 사원증이 들려있었다. ‘부장’이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더는 내 머리 위로 물이 떨어질 일은 없을 텐데도,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고, 이것은 현실이었다. 그것만이 사실이었다.
38세의 젊은 부장. 10년을 빠르게 승급한 것은 꽤 만족스러웠다. 그 사탕 가게를 알게 되고 나서 생긴 일 중에 가장 좋은 것이었다. 서울에 자가도 구입했고, 항상 눈칫밥을 먹으며 생활해야 했던 생활도 청산했다. 그러나 나는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모르는 불안이 생겼다.
모두가 수군거렸다. 나는 습관처럼 사탕을 씹듯이 이를 악물었다가 턱에 힘을 풀었다. 10년간 그 사탕 가게에 다니면서 생긴 빌어먹을 버릇이었다. 나는 턱을 짜증스럽게 만졌다. 그런다고 이 습관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아사 직전의 사람처럼 간절하게 턱을 문질렀다.
* * *
“오빌리안.”
“아, 콜론 씨. 오늘도 와 주셨군요. 2층으로 가시겠어요?”
“아니. 오늘은 1층에 있겠어.”
“그럼 그렇게 하세요. 메뉴판 가져다 드릴까요?”
“…….”
나는 한참 동안 오빌리안을 바라보았다. 남자의 얼굴은 10년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그의 비밀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지만, 첫 방문에서 나와 같은 나이로 보였던 남자가 여전히 같은 나이로 보인다는 건 언제 보아도 섬뜩했다. 내가 저지른 과오가 남자의 모습을 하고 웃고 있었다. 내가 죽어도 남자는 남아 있을 것이라는 사실에, 나는 왜인지 등골이 서늘해졌다. 과오가 웃는다. 그는 유혹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오늘도 그의 손을 잡았다.
“…오빌리안.”
“네, 콜론 씨. 이런, 이름표는 어디에 두고 오셨어요?”
나는 자연스럽게 내 가슴팍을 바라보았다. 단정한 정장 위에 두었던 은색 명찰이 사라진 그곳에는, ‘부장’이라는 직함과 내 얼굴이 박힌 사원증만이 꽂혀있었다. 오빌리안의 표정에 살짝 금이 갔다. 근 10년간 보지 못한 그의 동요였다. 그 사실이 꽤 기뻤다. 저 남자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고, 나와 같은 ‘실수’를 하겠구나. 오빌리안이 내 가슴에 꼽혀 있던 사원증을 뽑아 갔다.
“규칙을 어기셨어요, 콜론 씨. 새 명찰을 만들어 드릴게요. 그동안 이건…, 제가 맡아 드릴까요?”
나는 왜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을 짓누르던 것이 사라지자 한결 편해졌다. 그토록 간절히 바라 오던 희망은, 이제 기분 나쁜 무게가 되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것이 책임감인지, 죄책감인지는 알 수 없었다. 똑같은 ‘책(責)’인데 무언가와 결합한 그 의미는 사뭇 달랐다. 어릴 때 외웠던 것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나는 내 발밑에 널브러진 책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죄책감, 책임, 책무, 그런 것들이 어지럽게 섞여 오빌리안이라는 남자 앞에서 멈추었다. 그는 손에 은색 명찰을 들고 있었다. 나의 책이 다가온다. 책의 체온은 미지근했다.
“잃어버리지 말아주세요. 그동안 이런 일 없으셨으면서.”
“…고맙군.”
“별말씀을요. 정말 오늘은 개인 메뉴판을 받지 않으셔도 되겠어요?”
“그래. 오늘은…, 그냥 쉬고 싶어.”
“그럼 커피를 가져다 드릴까요?”
쉬고 싶다는 말과 커피는 어딘가 거리가 멀었다. 일할 때 인내에도 한계에 다다른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기 위해 만들어진 음료가 아니던가. 하지만 나는 그 본능 따위에서 벗어나 보고 싶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 가장 익숙한 음료는 그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내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그것이 속에 있던 어린 시절의 풍선이 터져 나오는 바람인지, 그저 웃음소리인지는 구분하기 어려웠다.
* * *
그건 우연이었다. 이곳에 온 철없는 학생에게 말을 건 것은. 그 소녀의 이름은 ‘새미’라고 했다. 첫날, 그 소녀는 어두운 얼굴이었다. 세상의 모든 불행은 그 소녀를 따라다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나는 항상 무거운 책가방을 등에 메고, 함께 우울함도 이고 오는 것처럼 보이는 그 소녀를 바라보았다. 이전의 내가 비쳐 보여서라는 식상한 이유는 아니었다.
소녀는 매일같이 사탕을 사 갔다. 오빌리안과도 금세 친해졌다. 나에게도 귀찮을 정도로 말을 걸었다. 소녀는 항상 밝게 웃었다. 하지만 나는 그 웃음 뒤에 숨겨진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내 유년 시절의 결핍은, 소녀의 모습이었다.
“…씨! 아저씨!”
“……왜.”
“왜는요. 여기 앉아도 돼요?”
“다른 데 가. 아저씨 바쁘다. 자리 많잖아.”
나는 차갑게 말하며 서류를 넘겼다. 저 아이에게는 정을 붙이지 말아야 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사회에 나가 만날 사람들이 아니고, 저런 어둠들과 친해져 봐야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강했다. 게다가 이 아이와는 더더욱 친해지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사탕을 사 갈 때 경고해 주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내가 뭐라고, 이 아이에게 소중한 사람이 될 수는 없었다. 함부로 손을 내미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오만한 동정인지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
“에이, 저 친구 없단 말이에요.”
“난 네 친구 아니다.”
“그래도요. 오빌리안은 바쁘대요. 페리엇은 또 사고 쳐서 사탕 정리하고 있어요. 한가한 사람은 아저씨밖에 없다고요.”
“…한가하지 않다고 했을 텐데.”
“그냥 제 이야기 들어 주시면 안 돼요?”
손이 멈췄다. 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아이의 눈에는 물기가 많았다. 울음인가? 그걸 구분할 수는 없었지만, 아이는 어쨌든 웃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구분하기 어려웠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 속의 소년이 아우성치는 것인지, 속에서 뭔가 뜨끈한 것이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랑받지 못했던 소년은, 자신과 같은 아이에게 공감하고 있었다.
“…그래. 말해.”
“와! 있죠, 오늘은 학교에서 저를 괴롭히던 애들과 싸워서 이겼어요. 사탕 덕분에요. 음, 음, 있잖아요, 오빌리안이 준 사탕은 정말 마법 같아요. 계속 먹었더니, 절 괴롭히던 애들이 하나씩 다쳐요. 절 괴롭히면 저주에 걸린다는 소문이 퍼져서, 이젠 아무도 저를 건드리지 않아요.”
“……그게 너한테 좋은 거냐? 분명 사탕에 의존하지 말라고…”
“아이, 참. 저는 좋아요. 매일 당하는 것보다야, 차라리 무서운 사람이 되는 게 좋은걸요. 아무도 저에게 다가오지 않아요. 이제는 욕을 듣거나, 맞지 않아도 된다고요. 어른들이 해결해 주지 못한 걸 이 사탕 한 알이 해결해 줬어요.”
그렇게 말하는 새미의 눈은 반짝였다. 나는 새미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소녀의 눈은 전구 같았다. 동그랗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누군가 필라멘트를 끊어 버린다면 펑 터져 버릴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기에 함부로 공감할 수 없었다. 내 속의 소년이 어서 새미를 동정하라고 아우성쳤다. 나는 소년의 뜻에 반하여 입술을 짓씹었다.
“그거 좋은 거 아니다. 많이 먹지 마.”
“왜요? 맛있고, 마법 같은데.”
새미의 순수한 질문이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나는 새미를 쳐다보다가, 그녀의 질문에 내가 죽도록 싫어했던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의 소년이 미워했던 그 질문은, 내가 아직도 납득할 수 없는 것이지만, 나는 불쌍한 소녀를 말리기 위해 이 비겁한 답변을 해야만 했다.
“어른이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마. 그냥, 그러는 거야.”
“…치, 아저씨도 다른 어른들이랑 똑같아.”
“…….”
새미는 나를 쳐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탕 주머니에 사탕을 가득 담고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나는 왜인지 그녀를 붙잡을 수 없었다. 나에게 저 여자애를 말릴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차치하고, 내가 함부로 저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도 될지에 대한 의문이 나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나는 나 자신조차 말리지 못했다. 그런 사람이 누군가에게 손을 뻗을 수 있을까?
손목이 쓰렸다. 그날의 새하얀 반창고가 떠올랐다. 달콤해 보이는 그것은, 끝내 고통의 맛을 하고 있었다. 흉터 따위는 남지 않았는데도, 나는 손목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악마를 피해 도망친 이곳은, 과연 낙원이었을까?
* * *
몇 달이 지났는지는 딱히 세지 않았다. 회사원에게 그런 것이란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오빌리안을 만난 횟수나, 쉬는 날, 그런 것으로 요일을 가늠할 뿐이었다. 그날은 눈이 내렸다. 2월인데도 눈이 내리는 그 날은,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하늘에서 종이가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종이의 온도는 꽤나 차가웠다.
“오빌리안.”
“아, 콜론 씨. 이런, 눈이 많이 오나 보네요. 가게의 난방을 신경 써야겠어요. 코트를 받아 드릴까요?”
“아니, 됐어. 따뜻한 커피나 한 잔 줄 수 있겠나?”
“그럼요. 원래 15레테지만, 오늘만큼은 무료로 드리죠. 단골 손님에게 그렇게 박하게 굴 수는 없으니까요.”
“…답지 않게 농담을 다 하는군. 그대가 언제부터 나를 단골이라고 생각했다고.”
“단골이죠. 오랫동안 찾아 주셨는데. 기다려 주세요. 곧 갖다 드릴게요. 디저트도 같이 드릴까요?”
“지난번처럼 한 시간 동안 말을 못 하게 되는 케이크라면 미리 사양하겠어.”
“하하,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서비스로 드리는 생크림 딸기 케이크랍니다.”
“오늘따라 인심이 후하군, 오빌리안.”
“그냥, 그러고 싶네요. 뭔가 오늘은 좋은 느낌이 들어서요.”
“…페리엇은?”
“아, 제 ‘작은 실수’ 로 귀여운 강아지가 되어 버려서요. 옆 방에서 쉬고 있어요.”
“그 말을 들으니 더 불길해지는데. 정말 내게 먹이려는 게 멀쩡한 거 맞지?”
“그럼요. 콜론 씨가 강아지로 변한다면 좀…, 저에게도 반가운 일은 아닌 것 같거든요. 편하게 앉아 계세요. 곧 드릴게요.”
나는 코트를 벗으며 자리에 앉았다. 훈훈한 기운이 가게 안에 가득했다. 눈 오는 날에도 손님들은 존재했다. 내가 모두 아는 얼굴이지만, 그것이 왠지 안심되었다. 적어도 이 날씨에, 눈보라보다 더 큰 고민을 안고 다가오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서비스’ 라는 명목으로 오빌리안이 준 커피에서 김이 났다. 안경에 서리가 꼈다. 시야가 흐릿해진다. 나는 눈을 감는다. 잠이 오지 않음에도 시야를 마비시키는 건, 꽤 만족스러운 기분이었다.
* * *
내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나는 가게 앞에서 머뭇거리는 인영을 보고 미세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이 기분이 상해서 그런 것인지, 흐릿해진 시야를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한 노력이었는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다만, 이 이상한 날씨에도 가게를 찾아온 손님이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을 어지럽혔다.
“아, 손님이군요. 들어오세요. 분명 흥미로운 사탕이 가득할 거예요.”
오빌리안이 부드럽게 웃었다. 나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오빌리안의 ‘손님맞이’를 보는 건, 언제나 꽤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와 같은 사람이 생기게 될 거라는 위기감, 그리고 나만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닐 것이라는 데서 오는 미묘한 안도감. 그런 것들이 섞여 진득한 빛을 띠고 소용돌이쳤다. 내 입으로부터 다시 흘러나온 것은 눈앞의 잔에 고인 커피가 된 것일지도 몰랐다.
인영이 머뭇거린다. 그는 문을 잡았다. 그리고 발을 들인다. 그 일련의 과정이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처럼, 꽤 느리게 흘러갔다. 그리고 오빌리안의 입술도, 천천히 올라갔다. 인영은 나와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회사에 출근하는 건지, ‘나’라는 인격에 대한 장례식에 매일같이 참석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검은 정장. 왠지 동질감이 더 커졌다.
나는 인영을 한참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그는 사라지지 않았다. 가게 안으로 들어온 그는 오빌리안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오빌리안의 예감은 항상 맞았다. 그는 오늘 새로운 손님을 얻었고, 꽤 만족스러운 실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말릴 수 없었다. 누군가의 사정에 함부로 끼어드는 건 기만이다. 나는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인영이 사탕을 집어 든다. 그리고 나는 그걸 지켜본다. 마치 쇼에 초대된 관객처럼, 혹은 심문실에 앉아 취조받는 누군가처럼. 내 인생의 가장 큰 책이 웃는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이 모든 것이 꿈이라는 걸 믿는 편은 아니지만, 나는 불쌍한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싶어졌다. 나의 신은 내 기도를 들어 주지 않았지만, 저 사람의 기도만은 들어 주기를. 나는 새까만 커피를 마시며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습관처럼 턱에 힘을 주었다. 더는 끈적한 사탕이 남아 있지 않은데도 그랬다. 입에서는 씁쓸한 쇠 맛이 났다. 도망친 곳의 끝에서 맛본 사탕의 맛은, 누군가의 피 맛이 났다. 하지만 나는 구역질 같은 것이 나지 않았다. 그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래, 나는 이제 오빌리안과 비슷해졌는지도 모른다. 내가 가장 미워하던 누군가를 닮아 가는 건 나의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모순적이게도, 저 인영이 나와 같은 갈등을 겪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답이 없을 기도를 했다. 오늘도 응답은, 없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Waterproof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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