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igger Warning: 가정폭력 및 자해에 대한 간접적인 묘사가 존재합니다. 감상에 유의해 주세요.
-현실적인 배경이 등장하지만, 관련된 모든 서술은 1인칭 시점 캐릭터의 페르소나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지 제작자 본인의 어떠한 정치적/문화적/경제적 등의 사견이 포함된 것이 아님을 명시합니다.
-글에 등장하는 모든 지명/등장인물/세계관 등은 제작자의 독자적인 창작물이며,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신에게 묻겠습니다. 무저항은 죄입니까?과연 무구한 신뢰는 죄의 원천입니까?”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中
* * *
믿기지 않았다. 물에 잠긴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화장실로 돌아가 울렁거리는 속을 게워 냈다. 허연 위액이 쏟아져 나온다. 아까 먹었던 사탕은 나오지 않았다. 내 손목에 칼로 그은 것 같은 얇은 흔적이 생겼다. 좀 전의 상황이 생생하게 재생되었다.
나는 다시 변기에 머리를 박았다. 먹은 것도 없으면서, 나는 무언가를 게워 내야 한다는 신념에 미쳐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내 몸속에서 흡수된 그 빌어먹을 사탕은, 손목의 붉은 피로 나올 뿐, 들어갔던 곳으로 나오는 일은 없었다. 그것이 나의 잘못된 선택을 심판하는 것 같아서,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 * *
우리는 태어나지 않은 것에 기대를 걸고, 존재하는 자를 무시하며, 죽음을 존경한다. 난장판이 된 사무실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나의 뭔가가 끝나 가고 있다는 바이탈 기기의 소리처럼 들렸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내 착각일 것이다. 그걸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나는 피가 배어나오는 손목의 밴드 위를 꽉 눌렀다.
나는 사탕을 먹었고, 부장은 손목을 다쳤다. 꽤 이상한 우연이었다. 나는 우연이라고 믿기로 했다. 나와 부장 중 어느 누구도 강요에 의해 한 사람은 없었다. 부장은 점심시간에 화장실로 가 면도날로 손목을 그었다고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아니, 어쩌면 복잡했을지도 몰랐다. 책상 위에 초라하게 남겨진 메모지가 굴러다녔다. 나는 그 메모지를 주웠다. 깔끔하고 정갈한 필체로 고급스러운 모조지에 쓰여진 것이었다. 몇 주 전, 내가 받은 그것과는 다른 종이와 다른 필체. 하지만 나는 쓴 사람이 누군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내 라이벌을 죽게 만든 사람이자, 나에게 지독한 혐오를 느끼게 만든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었으니까. 이깟 새하얀 모조지 한 장이 얼마나 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곰팡이가 썩어 가던 판잣집의 냄새, 그리고 잉크와 종이 냄새가 가득하던 낡은 인쇄소. 그딴 역겨운 기억의 냄새들이 내 코끝을 맴돌았다. 그것은 지독하게 나를 따라붙는 가난의 꼬리표였다. 나는 마치 사탕을 씹는 것처럼 이를 악물었다. 더는 씹어야 할 사탕이 없는데도 그랬다.
나는 손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왜인지 구길 수 없었다. 100원짜리도 안 하는 이까짓 종이와 내 마음을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수많이 존재했기에, 이것을 내가 구기는 순간 나도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나는 그 종이를 자리에 가만히 내려놓고 도망쳐야만 했다.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나는 범행을 저지르고 자리를 뜨는 범인처럼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금기를 깨고 고급스러운 사탕을 먹은 대가는, 생각보다 달콤했다.
* * *
“이봐, 오빌리안.”
“아, 콜론 씨. 오늘도 찾아 주셨군요. 무슨 일이죠? 뭔가…뛰어오신 것처럼 보이는데요.”
남자의 물음은 차분했고, 그래서 더욱 무거웠다. 나는 오빌리안을 바라보았다. 오빌리안의 눈은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마치 문구점에서 물건을 훔치다 걸린 소년이 된 기분이었다.
“메뉴판. 그 메뉴판이라는 거 좀 봅시다. 정말…, 사탕 따위에 그런 힘이 있는 게 맞는지.”
오빌리안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남자는 카운터에 기대듯 손을 뻗었다. 남자의 몸이 가까워졌고, 그림자가 나를 덮쳤다. 나는 위기에 처한 동물이 그러듯이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손목의 상처가 쓰렸다. 오빌리안은 내가 손목의 상처 때문에 그랬다고 생각한 건지, 상처를 발견하고 유감이라는 투로 상투적인 위로를 해 주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휘어 있었다. 만족스럽게 실험 쥐를 쳐다보는 표정처럼. 나는 그것이 퍽 무서웠다.
“콜론 씨, 다치셨군요. 피가 나네요. 큰 상처는 아니었나요? 이곳까지 오신 걸 보면요.”
“…부장이 자해를 했소.”
“음?”
오빌리안은 놀라지 않았다. 그 모습에 나는 더욱 두려움을 느꼈다. 저 남자가 과연 나와 같은 존재는 맞을까? 어린 시절 아버지 앞에서 느꼈던 두려움이 재생되고 있었다. 날 때리거나 내 머리 위로 잉크를 부으며 막말을 퍼부을 존재는 이미 세상에 없어졌는데도 나는 어린 소년으로 돌아간 것처럼 바들바들 떨었다. 오빌리안의 색소 없는 저 회색 눈이 꼭 아버지가 죽던 그 날의 흐리멍텅한 그것과 닮아 있어서, 나는 몸을 움츠려야만 했다. 오빌리안의 손이 내 어깨 위로 얹어진다. 남자의 손은 크고 부드러웠다. 아버지의 것과는 달리.
“이런, 콜론 씨. 놀라셨어요? 괜찮습니다. 이봐, 페리엇. 담요 하나 좀 가져와. 손님이 많이 놀라신 모양이야.”
“세상에. 몸을 엄청 떠시네요. 오빌리안, 너 또 손님을 괴롭힌 거야?”
“…얼른 가져오기나 해.”
페리엇이라고 불린 갈색 머리의 남자가 부산스러운 소리를 내며 창고 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털이 잔뜩 달린 검은색 담요를 가져와 내게 건넸다, 나는 그것이 왜인지 동물의 털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뜻 받을 수 없었다.
“덮으셔도 됩니다. 세탁한 거예요. 어디 보자, 콜론 씨, ‘불행의 동행’을 구매해 가셨군요. 맞죠?”
“…맞소. 하지만…, 그런 효과를 원한 건 아니었소.”
오빌리안의 미소가 살짝 무너졌다. 그의 새하얀 손가락이 마치 갈퀴처럼 내 어깨를 그러쥐었다. 나는 그제서야 왜인지 안심할 수 있었다. ‘망각’이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가 화를 낸다는 것은 ‘존재’를 인정하는 것 같았기에, 이 남자도 나와 같은 ‘실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 두려움이 사라졌다.
“콜론 씨가 선택하신 거예요. 분명히 ‘대가’가 있다고 공지해 드렸잖아요.”
“그랬지. 그래…, 그렇지만 애들 장난인 줄 알았소. 세상에 그런 효과가 있는 사탕이 어디 있겠소?”
“애들 장난이요? 여기 ‘아이들’은 전혀 없었어요. 그걸 신기하다고 생각하신 건 콜론 씨죠. 그렇지 않나요?”
“그래, 그렇지. 그럼 정말…, 내가 부장을 그렇게 만든 거요?”
오빌리안은 대답하지 않고 싱긋 웃었다. 그의 표정이 다시 돌아왔다. 그는 어린아이에게 답을 묻고 정해진 답을 기다리는 선생님처럼, 혹은 절대자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히 키는 내가 더 큰데도,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것이 콜론 씨가 바라던 것이 아니었나요?”
나는 왜인지 그 질문에 아니라고 당당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항상 나를 괴롭히는 누군가의 죽음을 바라 온 적이 있었다. 아니, 사실은 많았다. 기괴하리만큼 많았다. 매일같이 술에 취한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던 어린 소년은, 아버지가 술에 취해 판자촌의 계단에서 굴러 사라져 버리기를 바랐고, 내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어른이 되어서는 부장이 그랬다. 내 라이벌이 죽자 부장은 새로운 약자이자 화풀이 상대를 찾았다. 나는 항상 운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나는 억울했다. 항상 피해자도, 가해자도 내가 되고 만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그렇기에 나는 항상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 그들의 유서 하나로 나는 나쁜 놈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죽은 이를 동정하고, 생존자를 의심한다.
“…오빌리안.”
나는 생각을 마치고 오빌리안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검은색의 메뉴판을 들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반항하던, 그리고 소리 높여 비명을 지르던 내 안의 소년이 고개를 들었다. 소년이 손을 뻗었다.
“…내게 남은 돈이 얼마였소?”
“‘레테’ 말씀이세요?”
“그래, 그거.”
“22레테 남으셨어요. 오늘 한 번 더 오셨으니 30레테가 추가되어 52레테를 가지고 계시겠군요.”
나는 메뉴판을 손가락으로 쭉 훑어보았다. 그리고 손을 멈추고 셈을 해 보았다. 형편에 맞지 않는 사탕은 탐내지 말자는 어머니와의 약속이나, 양심 따위를 부르짖는 내 안의 소년과의 약속은 이미 깨진 지 오래였다. 그들이 나를 먼저 저버렸으니, 내가 그것을 지킬 이유라고는 없었다. 착한 아이로 사는 건 이제 질릴 때도 되었다.
“…승진하고 싶소. 그런 사탕도 있소?”
오빌리안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의 미소는 사탕처럼 달콤했고, 악마처럼 매혹적이었다. 그는 메뉴판 한 곳에 있는 사탕을 가리켰다. 가게 문의 종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죄악을 저질러 낙원에서 추방되기 직전의 천사에게 들려주는 음악 소리처럼 들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렇게 달콤한 죄악이라면, 나는 기꺼이 손에 쥘 것이다. 천국이 나에게 준 것은, 어린 시절의 상처와 고통만으로 가득했다. 나의 신께서 믿음은 죄악이라고 하셨으니, 나는 당신을 믿지 않고 저버리겠다.
나는 손에 사탕을 쥐었다. 사탕이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것은 무척 아름다웠다.
기꺼이 홀릴 수 있을 것처럼.
-Waterproof (2)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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